누가 세상을 움직이는가. 우리의 생활양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주인공은 바로 상상력과 패기로 무장한 ‘혁신적 경영자’다. 기존 패러다임을 전복하는 ‘창조적 혁신가’는 어떻게 탄생하며, 그들의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신동아’는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이노베이티브 CEO 열전’을 새롭게 연재한다. 첫 번째 인물은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전세계 5억명의 사람을 연결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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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Palo Alto)에 위치한 페이스북 본사. 기자들이 콘퍼런스룸을 가득 메운 가운데,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한 청년이 무대에 섰다.
그 주인공은 전세계 5억명의 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26).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그는 수개월간 개발에 매달린 새로운 서비스 ‘플레이시스(Places)’를 공개했다. | |
“오늘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다른 친구의 위치를 찾도록 돕는 서비스 ‘플레이시스(Places)’를 선보입니다. 미래에는 이 서비스에 광고도 포함할 예정입니다.”
플레이시스는 위치기반서비스(LBS)를 바탕으로 스마트폰 사용자의 위치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소프트웨어다. 물론 당사자의 허락 없이는 위치 정보가 타인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이를 허락한다면, 페이스북 사용자 5억명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서로 파악하는 진풍경이 벌어질 것이다.
한 청년이 창조해내는 새로운 서비스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저 사교용에 그칠 수 있었던 하나의 인터넷 서비스가 ‘세계를 연결하는 도구’로 진화했다. ‘보다 열려 있고, 서로 연결된 세상을 만든다(making the world more open and connected)’는 주커버그의 꿈이 현실화하는 중이다. 지난 3월 페이스북은 미국 시장에서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검색엔진 ‘구글’의 방문자 숫자를 추월했다. 전문가들은 페이스북을 애플, 구글과 함께 뉴미디어 시대를 이끌 주역으로 손꼽는다.
마크 주커버그는 지금 세계 IT업계에서 가장 핫한 ‘스타 최고경영자(CEO)’다.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부터 ‘하버드대 출신 수재’ ‘제2의 빌 게이츠’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혁명가’까지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물론 그에게 찬사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2008년 미국의 IT 전문가 캐러 스위셔는 그를 두고 ‘아직 갓난아기(Toddler) 경영자’라 일컬었다. 페이스북의 사생활 침해 논란과 잇따른 소송은 그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슈 메이커, 마크 주커버그.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그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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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DNA |
주커버그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엘리트적 성장 배경’이다. 그는 1984년 미국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치과의사인 아버지와 정신과의사인 어머니 사이의 1남3녀 중 둘째다. 그의 누나와 여동생들 역시 수재로 통했다. 주커버그의 누나인 란디 주커버그는 현재 페이스북의 시니어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주커버그가 컴퓨터와 인연을 맺은 건 11세 무렵. 486DX 데스크톱 컴퓨터를 선물 받은 뒤 ‘멍청이를 위한 C++(C++ for Dummies)’란 책을 구입해 소프트웨어 공부에 나섰다.
9학년을 마칠 무렵 그는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율리어스 카이사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게임을 개발했다. 라틴어 수업에서 배운 역사를 스토리로 구성했다. 미국 최고 명문사립고인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 들어간 뒤에는 친구인 애덤 단젤로(Adam D?Angelo)와 함께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를 만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서비스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 아니, 고등학생이던 천재개발자 주커버그를 특채로 영입하는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진짜 속내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2002년 하버드대에 입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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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8일 미국 팰러앨토 페이스북 본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 마크 주커버그가 새 서비스 ‘플레이시스’를 소개하고 있다. |
주커버그가 컴퓨터공학과 함께 전공으로 택한 학문은 심리학. 그는 2006년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흥미를 갖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이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주커버그의 인문학적 DNA 덕분이다. 한번 빠져들면 사용을 멈출 수 없는 서비스를 창조한 힘도 결국 인간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로마 신화 읽기를 즐겼다. “지금 당신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라(Now you know who you?re fighting).” ‘영화광’인 그는 그리스 신화 ‘일리아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트로이’의 대사를 즐겨 인용한다.
주커버그의 악동 기질이 본격 발휘된 것은 2학년 때인 2003년. 그는 친구들과 함께 페이스북의 전신인 페이스매시(facemash) 사이트를 하버드대 내에 개설했다. 학생들 사진을 올려놓고 누가 더 매력적인지 투표하도록 만든 사이트였다. 학생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사이트를 개설한 지 수시간 만에 450명의 학생이 몰려 2만2000여 회의 투표가 진행됐다. 모범생이나 답답한 책상물림은 시도할 수 없는, 아주 엉뚱한 장난이었다.
대학은 즉각 사이트 차단에 나섰다. 교내 홈페이지에서 다른 학생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내려받아 사용한 것은 지적재산권 및 프라이버시 침해였다. 하버드대 교내 신문 ‘하버드 크림슨’은 페이스매시에 대해 “하버드대생의 가장 나쁜 면모와 영합했다(catering to the worst side of Harvard students)”고 보도했다. 투표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다보니, 성차별주의 및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도 거세게 제기됐다. 주커버그는 자진해서 해당 사이트를 폐쇄하며, 간신히 퇴학 위기를 모면했다.
이 사건은 2004년 2월 페이스북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하버드대 재학생을 온라인으로 연결한 이 사이트는 이용자가 각자의 사진과 프로필, 연락처를 남기며 인맥을 쌓도록 만들어졌다. 훗날 주커버그는 “페이스매시가 페이스북을 만드는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회상했다. 논란이 된 페이스매시의 기능을 없애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사진을 올리도록 유도해 지적재산권 침해 논란도 피한 것이다.
주커버그와 뜻을 함께한 이들은 기숙사 룸메이트인 크리스 휴즈(Chris Hughes)와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 모스코비츠와 함께 경제학을 전공한 에두아르도 세이버린(Eduardo Saverin)도 여기에 가세했다. 주커버그와 같은 전공의 앤드루 매컬럼(Andrew McCollum)은 영화배우 알 파치노의 이미지를 차용한 로고 디자인을 맡았다. 하버드대 기숙사 중 하나인 커클랜드 하우스는 그들이 상상을 펼치는 ‘꿈의 공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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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 CEO의 탄생 |
페이스북은 하버드대는 물론 예일대, 컬럼비아대 스탠퍼드대 등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두 달 만에 미국 전역의 대학으로 가입자가 확산되는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단숨에 유명인사로 떠오른 주커버그는 2004년 6월 ‘하버드 크림슨’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 아직 어린애죠. 쉽게 싫증을 내고, 컴퓨터에 미쳐 사니까요.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에요.”
당시 그는 “아직 풀어놓지 못한 게 절반”이라고 털어놓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프로그램 개발에 매달리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주커버그는 하버드대 중퇴 후 IT업계의 슈퍼파워로 떠오른 점에서 흔히 빌 게이츠와 비교되곤 한다. 실제로 주커버그가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하는 데 빌 게이츠의 하버드대 특강이 영향을 미쳤다.
“진정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수업에 빠져도 됩니다. 하버드대이기 때문에 가능하지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실패한다면, 나는 하버드대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는 이에 용기를 얻어 학교를 나왔다. 2004년 6월 그는 동업자인 친구들과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로 사무실을 옮기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네 개의 침대와 수영장을 갖춘 이 사무실은 일명 ‘카사 페이스북(Casa Facebook)’으로 통했다.
페이스북은 2005년 모든 고등학생에게 퍼졌다. 2006년에는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페이스북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입소문을 타고 페이스북은 첫 3년간 이용자 3억명을 확보했다.
CEO 주커버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실리콘밸리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탓일까. 그는 공식 행사에서도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을 즐겼다.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스티브 잡스처럼 말이다. 그가 집착한 또 다른 패션 아이템은 바로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회사 설명회에서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도 늘 청바지에 티셔츠, 슬리퍼 차림으로 무대에 나섰다.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몸, 곱슬머리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 그의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보면 경영자라기보다는, 영락없이 앳된 대학생의 모습이다. 벤처캐피털 회사 엑셀파트너스의 CEO 짐 브라이어는 주커버그와 함께한 식사 자리를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는 와인을 주문했는데, 주커버그는 음료로 스프라이트를 주문하더군요. ‘난 아직 술을 마시기엔 어리다’고 하면서.”
한 회사의 CEO가 된다는 것은 대학 룸메이트와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주커버그와 친구들은 실리콘 밸리의 ‘프로’들과 만나며 점차 경영자로 성장했다. ‘냅스터’ 등을 설립한 션 파커(Sean Parker), 벤처캐피털리스트 맷 콜러(Matt Cohler) 등이 합세하며 페이스북은 기업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주커버그가 페이스북 설립 초기 CEO로서 롤모델로 삼은 인물은 ‘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 도널드 그레이엄이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업 지배구조와, 수익과 공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신문산업 특성을 페이스북에 참고할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앳된 겉모습과 달리, 그는 업무에 관해 대담하게 결정을 내리는 편이다. 실례로 그는 회사 간부 절반이 다른 임원들에게 회사 상황을 동시에 보고하는 ‘이중보고 체계’를 없앴다. 7명의 회사 간부 보고를 자신에게로 일원화한 것이다. 이렇듯 과감한 실천을 통해 그는 조직을 장악해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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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보다는 ‘이용자의 행복’ |
주커버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재는 바로 ‘부(富)’다. 2008년 이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의 타이틀을 3년째 지켜오고 있다. 현재 그의 자산은 약 40억달러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주커버그가 ‘눈앞의 돈벌이’만 좇아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커버그에게 ‘광고를 통한 수익 극대화’는 ‘페이스북 이용자를 행복하게 하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다. 첫 번째 광고주 마스터카드가 페이스북에 광고 캠페인을 벌인 뒤 가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페이스북은 ‘광고 플랫폼’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명 대학에 다니는 부자 대학생’이라는 정확한 타깃 고객을 보유한 것이 페이스북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광고 유치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 이는 페이스북의 재무담당 실무자가 가장 답답하게 여긴 부분이기도 했다. 그는 대학생인 이용자들의 즐거운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골드만삭스나 머서매니지먼트컨설팅의 광고 게재를 거절했다.
거액의 인수 제의에도 그는 초연했다. 오히려 더 높은 값을 불러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2006년 1월 미국 미디어그룹 바이어컴이 “7억500만달러에 페이스북을 인수하겠다”고 나서자 그는 “20억달러를 달라”고 받아쳤다. 물론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관심을 보인 기업 중에는 유독 미디어기업이 많다. 이들은 신문, 방송에 이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미래의 미디어’로 각광받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역시 페이스북의 경쟁사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한 데 이어 페이스북에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머독의 유혹에도 그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온라인 광고시장 장악을 위해 닷컴 기업들도 ‘페이스북 인수’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을 10억달러에 인수하고 싶다는 야후의 제안을 “충분하지 않다”며 뿌리쳤다. 호시탐탐 페이스북을 노리던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에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분 1.6%를 인수하는 대가로 페이스북에 2억4000만달러를 투자했을 뿐이다. “페이스북을 왜 매각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주커버크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난 페이스북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를 생각해왔지,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는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보다 우리가 만드는 페이스북이 훨씬 더 흥미로울 거라 생각합니다.”
‘세상을 모두 연결하겠다’는 페이스북의 성장세는 거침이 없다. 지난 7월 페이스북은 이용자가 5억명을 넘어서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이트’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초 1억7000만명이던 이용자가 1년 반 만에 무려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가 35조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8월20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페이스북 가치는 현재까지 거래된 가격을 기준으로 최고 300억달러(약 35조5000억원)이며, 2~3년 안에 500억달러(약 59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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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혁명, 미니멀리즘 |
페이스북이 이처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페이스북에 담긴 주커버그의 철학을 이해한다면,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 프로필란에 남긴 관심사들은 곧 페이스북이 지향하는 가치를 보여준다.
‘개방, 깨뜨리기, 혁명, 정보 흐름, 미니멀리즘, 만들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없애려는 욕망.’
페이스북의 매력은 간결함과 개방성에 있다. 이는 한국의 대표 SNS ‘싸이월드’와 뚜렷이 차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의 유저 인터페이스(UI·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기능과 디자인)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이용자들은 페이스북의 ‘뉴스피드(News Feed)’ 기능을 통해 친구들의 웹페이지를 일일이 방문하지 않고도, 그들의 일상을 편리하게 알 수 있다. 친구가 어떤 동호회에 가입했고,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며,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한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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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바로 ‘개방’ 정책이다. 외부 개발자들에게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 및 메시지 형식)를 공개하는 ‘F8’이란 전략 덕분에, 누구나 페이스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특히 지난해 등장한 ‘페이스북 커넥트’는 페이스북이 마이스페이스를 제치고 SNS의 절대강자가 되게 한 일등공신이다. |
마크 주커버그(왼쪽)와 페이스북 직원들이 징을 치며 새로운 서비스 ‘플레이시스’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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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등 다른 사이트에서 페이스북 계정으로 로그인한 뒤 글을 쓰면, 해당 사이트뿐 아니라 페이스북에도 글이 올라간다. 그는 F8전략으로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모두와 공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자신의 다짐을 실현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국경을 넘어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페이스북의 소름끼치도록 똑똑한 기능 중 하나는 이용자가 입력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지인(知人)을 정확하게 찾아낸다는 점. 가입할 때 이용자가 넣은 e메일 주소, 페이스북 친구들, 친구의 친구들, 출신학교 정보 등을 분석해 친구를 자동으로 추천해주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이용자라면 연락이 끊긴 친구나 해외출장에서 알게 된 비즈니스 파트너 등을 페이스북에서 만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기능은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가 미흡하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페이스북은 이용자의 개인정보 대부분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이들의 정보를 제3의 웹사이트와 자동 공유하도록 한 조치로 사생활 침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 장난삼아 ‘페이스매시’를 선보일 때부터 그는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를 극복해야 페이스북의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주커버그 역시 잘 알고 있다.
주커버그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은 소송이다. 그는 하버드대 동기이자 인맥구축 사이트 ‘커넥트유’를 운영하던 타일러 윙클보스 형제들로부터 아이디어 도용 혐의로 피소됐다가 2008년 합의한 바 있다. 주커버그가 자신들이 의뢰한 SNS 아이디어를 훔쳐 창업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페이스북은 최근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7월 뉴욕 웰스빌에 사는 폴 세글리아가 뉴욕주법원에 “페이스북 지분 84%를 갖고 있다”며 페이스북과 주커버그를 상대로 소유권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소장에서 주커버그와 2003년 사적으로 계약을 했으며, 이에 따라 페이스북의 실질적 소유권과 경영권을 자신이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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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이 되다 |
여기에 대해 주커버그는 단호한 입장이다. 7월 ABC월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페이스북의 소유권을 가지는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quite sure)”고 밝혔다. 페이스북 측은 “마크에 따르면 세글리아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우리는 그 계약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강하게 의심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소송에 대한 공식 입장 발표를 조심스러워하던 상황에서 페이스북이 주커버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주커버그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이렇듯 고달픈 송사가 이어지고 있다.
주커버그의 유명세를 절감할 수 있는 대목은 26세밖에 안 된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과 영화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억만장자의 성공 스토리는 먼저 소설로 탄생했다. 벤 메즈리치(Ben Mezrich)의 소설 ‘벼락부자(The Accidental Billionaires)’는 페이스북의 설립 과정을 그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이 소설을 ‘꼭 읽어야 할 비즈니스 서적 5선(選)’ 중 하나로 소개했다.
하지만 주커버그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소설의 부제 ‘페이스북의 설립 : 섹스, 돈, 천재 그리고 배신’에서 알 수 있듯 말이다. 작가는 주커버그를 ‘제2의 빌 게이츠’에 비유하되, 그를 세상을 바꾸겠다는 욕망보다 성적 욕구가 더 큰 인물로 묘사한다. 작가는 주커버그가 두 욕망을 모두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약탈과 기만에 빠져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10월1일 미국에서 개봉하는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주커버그를 더욱 긴장시키는 폭탄이다. 소설 ‘벼락부자’를 재구성한 이 영화는 ‘세븐’ ‘파이트클럽’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거장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연출을 맡아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영화는 주커버그가 천재적인 기질로 성공에 이르는 과정에서 법적 소송에 휘말리는 상황을 다룬다.
‘적을 만들지 않고는 친구를 5억명 만들 수 없다’는 영화 속 카피는 주커버그를 어떤 캐릭터로 그려낼 것인지 강렬하게 암시한다.
이 영화에 대해 주커버그는 어떤 반응은 보였을까. 그는 올해 6월 D8 컨퍼런스에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나에 관한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ABC월드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영화는 픽션”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에 관한 현실의 진짜 스토리는 지루합니다. 우리는 단지 6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열심히 프로그래밍을 했을 뿐입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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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에 복무하는 사회운동 |
지금 당장 주커버그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그가 지난 6년간 보여준 세계는 어쩌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실리콘밸리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기업공개(IPO) 대어’로 꼽히는 페이스북의 상장이다. 블룸버그는 8월 페이스북 내부 사정에 정통한 다수 취재원의 코멘트를 인용해 “페이스북이 2012년까지 IPO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2011년 IPO가 이뤄질 것이라 믿었던 투자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소식이었다.
상장 연기로 주커버그는 페이스북 이용자 수와 매출을 더 늘릴 기회를 얻었다. CEO로서 리더십을 길러나갈 시간도 벌었다. 개인정보 공개 방식이나 보안 수준에 대한 문제도 풀어야 한다. 페이스북 지분 84%를 주장하고 나선 폴 세글리아와의 소송도 매듭지어야 한다. 사람들을 놀라게 할 또 다른 서비스도 준비해야 한다. 페이스북이 상장된 후 주커버그는 더욱 준엄한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페이스북을 가장 통찰력 있게 분석한 책인 ‘페이스북 이펙트(The Facebook Effect)’의 저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은 여러 논란에 대해 “페이스북의 문제점은 투명성(transparency)이라는 비전을 추구하다가 빚어진 일”이라고 지적한다. 커그패트릭에 따르면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을 ‘근본적인 투명성에 복무하는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간주한다. 주커버그는 커뮤니케이션이 빨라지고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개인과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통해 전쟁과 같은 비극적 사태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신봉하는 이념이 지나치게 낭만적인 것은 아닐까.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세계’에 매료되는 사람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가슴과 열정을 뒤흔드는 그 힘만으로도, 그의 꿈과 신념은 위대하다 |